
한미유치원 신문 제 0009호 2014년 12월 13일자 · 발행인 박소미 / 디자인 이경진
놀이는 어린이의 삶이다
‘놀이는 어린이의 삶’이다.
‘감탄하고 노래하며, 탐구하고 놀이하는 한미유치원’
2014년에 이르러, 한미유치원은 스스로를 이러한 교육환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30년 동안 많은 어린이가 이곳에서 유아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국, 그들이 한미유치원을 ‘놀이는 어린이의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켰습니다. 30년 동안 많은 어린이, 교육자, 가족이 함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박소미 원장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며 한미유치원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한미유치원은 예전에 어떤 유치원이었나요?
A. 지금의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 있는 곳이 허허벌판이었고 1시간에 한 번 오가는 경의선이 서울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을 때 저는 한미유치원을 설립했습니다. 한 10년쯤 운영하던 중 일산이 신도시로 탈바꿈되어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외적인 변화에 맞추어 유치원의 규모도 커져서 지금의 인가학급과 정원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지요. 이십여년 전의 한미유치원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환경이 다르고 운영방식이 달랐습니다. 잘 가르치는 것을 자랑하던 그때 우리 유치원 환경은 본관에 교실과 복도뿐이어서 어린이들이 유치원 시설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운영은 참 잘 되었지만, 뭔지 모를 불안과 가슴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1996년 까지의 한미유치원은 교육업체의 교재와 교구를 활용해서 짜여진 교육과정을 열심히 운영하던 교육기관이었다.


Q.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A. 그때나 지금이나 원장인 저는 학구열이 강한 편이어서 각종 연수와 강연에 부지런히 참석하길 즐겼습니다. 교육 이론은 늘 그렇듯 들어서 머리로 알면되는 것이지 그것을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고민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피아제 이론은 물론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를 비롯해서 레지오에밀리아의 유아교육에 관한 강연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6년 가을, 그렇게 수년간 말로만 들어왔던 이탈리아 레지오에밀리아의 유아학교를 방문하는 10일간의 연수여행에 운좋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40명으로 구성된 연수여행단에 참여하지 못할까 봐 애태우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유치원 운영은 잘되는데 뭔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숙제를 풀어야만 하는 내적인 요구가 컸기 때문입니다. 여행 2주 전부터 ‘노란책’(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1996)을 읽었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대부분의 여행단원들이 너나 할것없이 열심히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던 그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우리는 레지오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복사할 의도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레지오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원리와 아이디어를 이용하려고 한다.”, “레지오 에밀리아는 모델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영감으로서만 이용되어야 한다.”
- 레지오를 방문했던 현장의 실천가들의 말
“어린이 교육의 문제는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 “도전과 혁신이 없는 학교는 흥미로운 학교가 아니다.”
로리스 말라구찌





레지오칠드런(Reggio Children, 레지오에밀리아시의 유아교육체제, 이하 레지오로 약칭)은 늘 준비되어 있는 곳이라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받게 해 줍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의 가슴 답답함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론과 실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교육현장이면서 동시에 삶의 공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원칙에 동의한다면, 당신네 나라에 가서 새로운 유치원 문화를 만들어 가십시오!”
칼리나 리날디
Q. 그 경험을 통해서 어떤 것을 배우고 느끼셨나요?
A. 제게 있어서 레지오 현장 연수여행의 경험은 문제 해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근본적인 고민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고민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여행 전의 고민과 후의 고민은 의미가 다릅니다. 연수 여행 전의 고민은 레지오 유아교육 현장을 보자마자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유아교육이 이렇듯 멋진 분야구나, ‘아하!’를 외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가르치는데 이곳에서는 살아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살짝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살짝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말로는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잘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답답함의 근원 중 하나는 바로 ‘복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지런히 연수에 참가해서 좋은 정보를 우리 유치원으로 나르는 배달꾼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레지오에서 받았던 영감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했을 때도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원장이 뭔가 또 새로운 정보를 날라오는구나 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저로서는 무분별하게 남의 것을 가져다 쓰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참 매력적인 일이고 도전 거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여튼, 레지오 연수여행은 유치원의 교육방향을 고민하고 다시 설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잘 가르치는 유치원’으로 꾸준히 성장해 나갈까, 아니면 ‘새로운 교육의 문화’를 일구어나가는 도전을 해야 할까 하는 두 갈래 길에 서게 해 주었습니다.
레지오 연수여행을 마치면서 그곳의 수석 페다고지스타인 칼리나 리날디는 ‘우리의 원칙에 동의한다면, 당신네 나라에 가서 새로운 유치원 문화를 만들어 가십시오!’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 문화란 우리를 둘러싼 보다 커다란 사회-이를테면, 브론펜브레너의 거시체계-와 관련이 있지 무슨 개별 유치원 단위에서까지 문화를 만든단 말인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깨달음과 감동
Q. 처음에 어떤 시도를 하였나요?
A. 레지오에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몇 원장님들과 우리도 뭔가 시작해보자고 결속을 다졌습니다. 그해 겨울 우리는 3층에 아틀리에를 새로 마련했고 그 이듬해 봄학기부터 레지오를 실천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첫해 그러니까 1997년은 열정 그 자체인 시기였습니다. 오문자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서울, 경기, 부산에 있는 다섯 기관이 현장연구와 실천을 도모하기로 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대화록을 분석하고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해 나갔습니다. 부산과 일산을 주1회씩 오가야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해에는 프로젝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한미유치원의 레지오 접근은, 학자와 사립 유치원의 원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부모와 교사로 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역사나 문화에 대한 공감 보다는 기존의 교재 교구 중심, 짜여진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던 사람들의 대안찾기 시도 중 하나였던것 같다.

한미에서 시도했던 프로젝트는 바로 ‘알나무 동네’와 ‘먼거리 달리기’였는데, 정규 학급이 아니라 오후 종일반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열의에만 차 있는 원장과 전사록을 분석하는 연구팀이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어린이로부터 일어났습니다.





Q. 그 시도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A. 위의 에피소드에서 간단한 사실처럼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밀려왔던 감동과 깨달음은 나에게 대단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1년 동안 배워야 할 내용이 짜여진 과정을 따라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어린이들의 유능함과 끈질김을 발견하게 된 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40명이 있는 교실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단원에 따른 학습활동과 학습지로 배우는 일에 얼마나 큰 오류가 있는지를 깨달은 일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도전과 시행착오
Q. 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A. 물론, 새로운 접근법을 현장에 도모하는데는 위험부담도 따라서 일부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실험 대상이 되는게 아니냐고 떠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교사들 중에서도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교수법이라면서 이직을 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짜여진 교육과정은 예측과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틀에 맞추면 적어도 잘 가르치는 교사일 수가 있지만,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란 당시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했기 때문에 사실 학급 담임으로서 이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지도팀에 대한 신뢰와 담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무 것도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던 때라 지나친 부분도 있었고 일관성도 없었고 평가와 자기 평가 과정이 미흡했던 때이기도 했으니까요.
다른 곳의 성공사례를 보고, 가능하겠다 싶어서 비슷한 시도를 하면 그 성공까지 있었던 무수한 시행착오의 역사도 함께 따라온다. 특히, 문화는 복사 붙여넣기가 불가능하다. 첫 시도에서 부터 교사, 부모 그리고 다양한 것이 맞물린 문화에 관한 이슈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Q. 교사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A. 어린이들의 유치원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는 레지오 접근법이 매우 좋다는 것은 알지만, 이를 실천에 옮겨줄 현장 특히 교사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알나무동네와 먼거리달리기 프로젝트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정규학급이 아니라 오후 종일반 어린이들과 지낸 이야기입니다. 이제 일반 학급에서 일상적인 일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유아교육과 학생 신분으로 혼자서 레지오에밀리아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한소현 선생이 1999년에 한미유치원 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레지오접근법을 실천해 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오문자 교수께 도움을 요청했고 적극 지원해 주셔서 교수님의 지도하에 만5세 학급에서 발현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대표 프로젝트: 진짜알 가짜알). 다음 해인 2000년에는 서윤희 교사와 함께 2교사담임으로 만4세반을 맡아서 어린이들의 몸에 맞는 학급을 운영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부터 2교사제를 도입해서 차츰 적용하다가 2003년이 되어서야 전체 2교사제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많은 교사들이 우리 현장을 떠났고 새로운 멤버로 교체되었습니다. 정이 많이 들었던 그 당시의 교사들과는 지금도 정겹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 힘들어했던 교사들을 도와주지 못했고 도와줄 방법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 반에서 두 교사가 함께 담임으로 일한다는 것은 학급의 일을 둘이 반씩 나누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서로의 시각을 나누고 협의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결과를 예측해서 미리 인쇄된 교육과정 계획안을 복사하여 수행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사 주도적인 교육과정의 틀로 일할 때에 비해서 발현적 교육과정이라는 운영방식은 자신만의 벽을 허물어야 하고 벌거벗는 느낌이 된다고 교사들은 심정을 토로합니다.
이런 시도를 할 때, 열정과 동기는 모든 일의 바탕이 되는 필수적인 소양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인 열정, 동기의 차이는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어린이의 놀이문화도, 성인의 협업문화도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는 것은 그 문화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 한소현 선생은 현재 미국 Northern Iowa 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두 교사가 함께 일하면서 시각을 나누고 교육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확인하게 되지요. 일해 온 경륜에 따라 상하관계로 일하던 종전의 안일함에서 벗어나 늘 깨어 어린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민감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초임 교사들과도 일의 내용을 토론하며 민주적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도전을 받게 되고 때에 따라서는 자존심을 다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오 현장에서 20여년의 교사경력을 가진 아멜리아 감베티는 ‘동료 교사들과 더 이상 토론이 일어나지 않고 도전 받을 일이 없을 때는 교사로서의 수명을 끝내야 할 때’라고 충고합니다.




협력관계
Q. 한미유치원만 이런 시도를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레지오로부터 영감을 얻은 다른 유치원들도 있었나요?
A. 2002년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레지오에밀리아 서울 전시회 진행팀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문성, 시연, 동은, 한미유치원’은 오문자 교수가 운영하는 KCCT를 중심으로 협력관계를 맺습니다. 협력에 의한 지식의 공동 구성이라는 원리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철학이자 논리일 것입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전제이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인의 차원에서도 도전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네 유치원들 간의 협력 방식은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2002년 가을에는 함께 현장연구를 하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미국 St. Louis 레지오 협력기관을 방문하여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2003년 1월에는 교사들과도 함께 동일한 기관을 방문하여 수업을 참관하고 기록물을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레지오의 이탈리아어 기록물은 읽을 수 없었지만, 영어 기록물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교사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레지오 접근법을 10여년간 미국 현장에 적용하면서 도모했던 그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도해볼만한 도움계단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 네 유치원들은 4년동안 해마다 다른 이슈로 협력모임을 가졌습니다. 협력체제가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보다 높은 수준에서 조망하고 방향 설정을 해 준 오문자 교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유치원들이 함께 현장의 변화를 시도해 온 이야기인 ‘레지오 접근법과 우리 어린이’라는 도서를 2006년에 공동 발간했습니다.
한편, 2002년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서울 전시회 이후 국내에서도 차츰 레지오에밀리아의 유아교육에 대한 학자들과 기관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레지오교육협회(KAREA, 후에 한국레지오교육학회)가 발족하였습니다. 레지오 접근법을 적용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늘어나면서 현장연구도 활발해졌고, 학계에서는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KAREA에 현장부가 생겨서 정기적으로 연수 내지는 패널전시에 많은 기관들이 참여하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2014년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3년동안에는 좀 더 긴밀한 또 다른 협력유치원 관계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바로 협력유치원 교사들이 참여하는 수업장학입니다.







성장의 마디
Q. 2003년에는 OECD 유아교육과 보육 검토단이 내원해서 한미유치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요?
A. OECD 유아교육과 보육 검토단이 2003년 5월 21일 한미유치원을 방문하여 어린이들의 유치원생활 모습을 관찰하고 면담하였으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이 유치원은 정해진 주제를 토대로 수동적인 유아들에게 정형화된 방식의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 기존 한국 유치원의 지배적인 모델을 탈피한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학업성취를 강조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이는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다.”
이 평가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도가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마디를 만들기 시작했구나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부분들이 안팎으로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역사회와 협력관계를 맺는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유아교육과 보육정책에 대한 총괄적 진단과 분석: OECD의 관점” 보고서 — 한국교육개발원, 2004 (한미유치원 사례: Box 5)
OECD 「Starting Strong II」 한국어판 — OECD 2006, 번역 육아정책개발센터 2008 (한미유치원 사례: Box 6.3)
Q. 지역사회와 협력관계를 맺어 보려는 시도에서 2004년의 호수공원 전시회를 열었던 것인가요?
A. 마침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고, 지난 7년 동안의 경험과 배움을 정리하면서 한번 더 성장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미유치원의 모든 어린이들이 호수공원을 다채롭게 경험하는 이야기를 패널로 만들었습니다. 어린이가 이렇게 유능한 존재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시작하는 발현적 교육과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유치원의 교육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동시에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지역사회와 나누고 싶었죠.
어린이, 교사, 학부모의 열정과 기여로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립유치원의 태생적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정 유치원의 홍보를 위한 행사로 인식하는 시선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그래도 장문의 제안서를 만들어서 호수공원 관계자를 찾아가서 이 전시회가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일은 매우 즐거웠던 일로 추억됩니다. 레지오의 교육자들도 늘 이렇게 시와 관계를 맺어가는 협상을 끊이지 않고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구요.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있든지 어린이, 부모, 교사 모두 내가 삶의 터전이 되는 마을,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시민입니다.








학습공동체
어린이, 교육자, 가족간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조직체
Q. 한미유치원에 관한 자료를 보다보면 유독 ‘학습공동체’란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A. 어린이, 교육자, 가족이란 교육의 3주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첫번째는 역시 가족과의 관계입니다. 레지오 접근법을 우리현장에 적용하면서도 처음 6년간은 강연회 형식으로 대집단 모임 위주로 부모모임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강사를 초빙해서 강연을 듣거나 원장이 국내외 연수를 통해 얻은 지식이나 정보를 그 때마다 잘 전달하는 형식으로 ‘부모교육’을 실시했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한된 틀 안에서만 학부모님들을 대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짜여진 교육과정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발현적인 교육과정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고 도전하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타당성을 다지는 의미에서 전체 또는 연령별로 모이는 학부모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 생활의 일상에서 어린이들과 나누는 일이 의미 있어지고 자료가 쌓여감에 따라 전체학급은 물론 연령별 학부모 모임의 틀에서도 벗어나야겠다는 자체 내 욕구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3학년도에 교사들과 협의하여 학급별 ‘학부모협력모임’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유치원 안에서는 지금의 학급별 부모모임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주변을 살펴 보아도 학교기관에서 이렇듯 일상적으로 어린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교사와 부모님들이 얼굴을 맞대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아마도 발견하기 어려운 일 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협력모임을 탄생시킨 2003년의 시작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은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만나서 교실의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나누는 모임을 가져오다가, 2007년 7월 모임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님들이 소집단 토의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생각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협력모임을 가졌습니다. 때로는 좀 더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전의 방식으로 회귀하기도 하는 나선 형태로 진행 되었죠. 이전의 상태로 돌아와서 제자리걸음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약간 앞으로 나아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12년 부터는 ‘협력모임’이라는 표현 대신에 ‘공유모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아직 ‘협력’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한 형태로 이 모임을 운영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참여수업
배움나눔 워크숍
졸업생부모와의 만남
공유모임
강연회한 가족에서 어린이가 태어날 때, 성인도 부모로 다시 태어난다. 부모도 배우고 성장할 권리를 가진다. 한미유치원은 어린이의 가족 또한 유치원의 교육관에 공감하고 함께 노력하며 실천하는 교육의 주체이며, 유치원과 함께 앎과 삶을 펼쳐나갈 동반자로 간주한다. 교육관의 공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어린이는 일치하지 않는 가치관과 상황에 놓이게 되며 혼란을 겪게 된다.
Q. 공유모임을 하면서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습니까?
A. 학부모님들이 기록에 민감한 반응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공유모임은 상담과는 다르게 어린이 한 명마다 이야기보다는 교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놀이에 대한 소개와 교사가 해석한 교육적 가치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부모 마음은 아무래도 내 아이의 이야기나 사진이 나오지 않으면 ‘과연 내 아이는 저런 놀이에 잘 참여하고 있나?’하는 의구심이 들거나 실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혹여 특정 어린이의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면 그런 걱정은 증폭되게 마련이고, 이 모임에 참여할 동기가 떨어지기도 하지요. 이런 맥락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가 학부모에게 어린이의 유치원 생활과 성장의 기록을 공유하는 ‘포트폴리오’입니다.

Q. ‘포트폴리오’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었나요?
A. 처음에는 교사들이 평소에 꾸준히 기록하는 내용을 부모와 나눈다면 학교와 가정의 다리역할을 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놀이 중에 어린이들이 했던 특유의 유능함이 드러나는 말과 사진을 공유하면 한미유치원이 발현적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더욱 공감을 해주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린이들의 능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이 된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어린이의 성향에 따라 언어적인 표현이 활발한 어린이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문자로 기록되기가 쉽겠죠. 하지만 도식적 언어로 잘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어린이는 말은 별로 없지만 다양한 상징으로 친구들과 감정을 주고받고, 이런 감정의 흐름은 기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공유모임에서 다른 가족의 자녀와 비교하며 시작된 걱정은 포트폴리오를 통해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과 불만족은 상담을 통해서 교사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같음을 통해 연결되고, 다름을 통해 성장합니다.”
버지니아 사티어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위기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올 뿐이다.”
제럴드 와인버그


2011 포트폴리오
2011 포트폴리오
2014 포트폴리오Q. 그 이슈가 교사와 유치원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요?
A. 교육과정의 운영과 교사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여러 가지 기록물 중 한 가지일 뿐이며 교육과정 운영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개인 자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정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교사를 의기소침하게 하며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귀가한 후 오후 시간은 하루의 놀이를 반추하고 짝교사와 협의를 통해서 교육과정을 조정하는데 써야 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한 또 다른 업무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발현적 교육과정에서는 오전수업의 분석과 기록작업이 충분해야 놀이가 재미있게 되고 어린이들이 몰입하게 됩니다. 모든 어린이의 포트폴리오를 같은 잣대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다양성은 물론 수업준비와 교사의 해석/분석의 질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학부모가 반 안에서의 차이 뿐만이 아니라 같은 연령대의 다른 반의 기록물과도 비교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일부 교사들은 부모와 공유하는 기록의 양과 질을 맞추기로 합의하려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결국, 다양성이 줄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유가 아니라 비교를 했던 것이죠. 어느 해에는 반 사이의 경쟁이 과열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어느 해에는 너무 편안하고 단조로운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다양성을 잃어가고 평평함이 발생하는 것은 학습공동체 형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2012년에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 고민을 공유하는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복잡한 맞물림
Q. 기록작업 공유에 대한 설문을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하였나요?
A. 내 아이의 기록을 챙겨주는 교사 보다는 어린이의 놀이와 모험에 동참해 주며 상호작용을 하는 교사를 원하는 부모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시 교육과정의 중심을 잡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물론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성장하는 이야기도 기록으로 잘 표현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하지만 한정된 시간과 여력 안에서 한미유치원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고, 교사들과 협의하면서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공유 방식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육자의 문화’라는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인간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메그 바든
“그 사회의 교육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넘기 힘들다.”
존 드보어
Q. 학부모께 꼭 이것만큼은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A. 올해 제 손자도 유치원을 보내 보니 학부모님들의 심정을 전보다 더 공감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유치원에서 ‘내 아이’보다는 ‘우리 아이’로 봐달라고 이야기해도, 내 아이에 대한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태도에 의해서 더 중요한 것이 가려지거나 신념으로 삼고 진행해왔던 교육과정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가 제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록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 제 기능을 합니다. 교사의 반성, 민감한 고민과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검열 없이 적고 이를 짝교사와 나눌 수 있어야 ‘놀이’를 제대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죠. 찐한 놀이가 이루어지고, 어린이들이 그 놀이가 수반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린이는 유능한 존재입니다. 그 유능함을 믿는 교사가 함께 모험에 동참하고 경청하며 상호작용을 한다면, 기록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하고 멋진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했습니다. 이 일이 정말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기다림과 믿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죠.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유치원에서도 가정에서도 분명 다음 단계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학부모님들의 참여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 오전 9시 부터 오후 2시까지 숨 돌림
- 가사와 양육
- 교육에 대한 관심과 학습, 참여
- 또래 부모집단에 의한 조바심
- 맞벌이
- 다 자녀
- 휴일도 양육의 연속
- 주양육자는 자녀와 끊임없이 살아감
- 오전 8시 30분부터 2시까지 반 어린이들과 상호작용
- 환경 정리
-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기록작업, 짝교사 협의
- 내일의 수업 준비
- 회의, 상호장학
- 공유모임, 행사 준비
- 부모 상담
Q.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학부모는 이 교육관에 공감하고 참여와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A. 참 답하기 어렵습니다. 성급히 일반화시킬 순 없겠지만 아마 많은 가정이 어렵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실 것으로 추측합니다. 부모가 참여할 다양한 기회가 분명 의미 있다고 동의는 하지만 치열한 일상에서 시간을 내기 어려우신 경우가 많이 있겠죠. 그러므로 그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참여해주시는 부모님들께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고, 그 시간이 의미가 있도록 주어진 여력 안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그래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그 참여 시간이 학부모님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참여수업 등을 통해서 자녀와 함께 놀이하는 경험을 하고 자신의 자녀에 대한 상호작용에 대해 되돌아보실 수 있는 질문을 드리는 일입니다. 공유모임에서도 교사의 발표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며 교사-부모, 부모-부모 간의 소통과 상호작용이 풍성하도록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고민해야 하는 과정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시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교육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해 학교와 함께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교육의 주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와 문화는 입소문을 타고 여기에 공감하는 교육관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들이 한미유치원을 찾고 자녀를 보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Q. 또 다른 복잡하게 맞물린 이슈가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A. 한미유치원은 2013년도부터 오후 2시 이후에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을 폐지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죠.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결정을 환영하지 않았던 가정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린 자녀가 늘 곁에 있는 상황이라면 양육을 맡은 부모는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일에 몰입하기 어렵겠죠. 그래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곳에 자녀의 양육과 보육을 위탁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한미유치원의 경우는 보육에 못지 않게 교육에도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학교다 보니까, 그 핵심이 되는 교사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루에 최소 3시간은 교사들이 수업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만, 방과 후 활동이 없더라도 교사가 늘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요소에 의해 맥락이 끊어지는 일이 늘 생깁니다. 우리의 현실 안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슬기롭게 다룰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Q. 유치원의 정규수업 시간이 끝난 후의 어린이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A. 지금 부모세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마을과 공터에서 자유로운 놀이가 자생하던 문화는 그 자취를 많이 감췄습니다. 많은 어린이는 학교가 아니더라도 어딘 가에 위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겠죠. 학원이 아니라도 학습지나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지금의 부모세대 역시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입니다. 그중 어떤 것이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백 가지(그리고 수백 배 더 많은) 언어 중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결국 아흔아홉 가지를 훔쳐가는 역할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회의 교육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넘기 힘들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 닿네요. 어린이의 건강한 삶과 관련해서 수많은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정말 실감합니다. 이런 시대에 한미유치원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차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정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겠죠. 어렵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학교가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교육자의 문화
설립자 최승준

저는 2002년과 2004년에 레지오 에밀리아를 방문한 후, 레지오 접근이 참 의미있는 일이라는 데 공감을 해서 유아교육을 다시 공부한 다음 한미유치원의 일에 동참했습니다. 2008년은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의 두 번째 전시에 어린이들의 표상을 상호작용 가능한 형태로 확장한 작업으로 참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시회와 함께 열린 국제 학술 대회에서 “레지오 에밀리아와 대화를 통한 새로운 글로벌 시민 교육의 개발: 스웨덴 정치와 교육맥락 안에서의 도전”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스웨덴 스톡홀름 레지오 에밀리아 연구소의 해롤드 가쓴(Harold Gothson)이 한미유치원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해롤드 가쓴이 준 충격과 배움
‘이 기록은 누가 얼마나 다시 읽나요?’
레지오를 방문했을 때 기록작업과 이를 관리하는 ‘다큐먼테이션 센터’의 중요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한미유치원도 2004년부터 종이매체로 만들던 연구자료를 전자문서(PDF)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 즈음이 되니까 어느새 이 연구자료가 100여 건이 축적된 상태였습니다. 해롤드 가쓴이 방문했을 때, 저는 자랑스레 그렇게 축적한 자료를 보여주었죠. 하지만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했죠. ‘이 기록은 누가 얼마나 다시 읽나요?’ 저는 이 질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누군가 읽고 도움을 받고 있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고 명확하게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돌아간 뒤에 교사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작성하고 쌓아놓은 기록들은 찾아보기에 양도 많고, 그것을 다시 읽고 배움을 얻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교사들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내용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구글의 문서도구를 도입하거나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보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이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습니다.
레지오 접근이 주는 영감은 프랙탈 구조가 아닐까?
만약 레지오 접근이 보편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다루는 것이라면, 어린이에게만 적용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인에게도 충분히 적용가능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마치 프랙탈처럼 다른 층위에서 비슷한 구조가 발견되는 것 처럼요. 물론, 성인은 성인에게 적합한 방법이 있을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2008년의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회 패널 텍스트에 있었던 로리스 말라구찌가 쓴 ‘교사의 권리’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벽을 계단으로 만드는 힘
함께 경험한 일을 되돌아 보며 공감하고 개선점을 찾는 ‘회고’
권리장전을 여러 번 읽어봐도 그 가치에는 정말 공감을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막막했습니다. ‘기록작업을 통한 학습의 가시화’에 나오는 ‘교사 집단과의 대화’가 여러 가지 힌트를 주었죠.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조금만 더 하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단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예술분야와 IT분야를 넘나들어야 했는데, 마침 IT의 애자일(Agile) 접근이 레지오 접근이 추구하는 가치와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고 느껴졌고, 2000년대 후반부 IT분야에서는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게된 방법 중에 조직 구성원이 함께 경험한 일을 되돌아 보며 공감도 하고 개선점을 찾는 ‘회고’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2008년에 애자일 컨설팅의 김창준 대표와 김경수씨의 도움을 받아 교사 대상으로 회고를 경험해 보는 워크숍을 진행 했습니다. 이 때 한미유치원은 현대적인 업무 환경으로 메일링 리스트(한 번 메일을 보내면 구성원 모두가 메일을 회람할 수 있는)를 도입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것과 실제 대면하면서 소통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고, 회고는 딱 필요했던 방법이었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일터에 대해서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것을 아쉬워하며, 어떻게 개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이 회고는 아슬아슬한 국면으로 전개됐습니다. 또 다른 시행착오가 막 시작된 셈이었죠. 이번에도 어김없이 문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징검다리 놓기
피드백에 대한 트라우마
처음 경험했던 회고 워크숍은 우리가 피드백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모르고 있었나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공개적인 상황에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와 개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 아직 충분히 연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민감한 이슈를 꺼내게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피드백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결국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말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첫 시작을 다시 편안하게 할 방법은 뾰족하게 떠오르진 않습니다. 조직 안에 이미 내재해 있었고, 그러므로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었을 것입니다.
아쉬움을 밝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부정적인 경험만 있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경험이기도 했죠. 그렇게 홍역을 한 번 치르고 난 후, 상처를 주고 받은 사람들은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하지만 피드백에 대해 건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회고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아쉬움만 이야기한다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아쉬움에 대해 공감을 하고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국면은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로도 몇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미유치원에서 회고는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변화의 징조
2009년부터는 내부 소통에 사용하고 있었던 메일링 리스트에서 어떤 이슈가 생길 때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6월의 어느 날 원장님이 보낸 ‘기록작업’에 대한 메일에 답장으로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다분히 편집자의 의도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의 부분 부분을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이 시도 역시 또 하나의 도전이군요.
‘레지오’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저희에게 기록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이 의무가 된다면 저희에게는 부담이 되어지는것 같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자신이 스스로 하는 일이 훨씬 더 즐겁고 능률적인 것 처럼 저희에게도 기록이 어린이들에게 놀이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교사들이 업무량이 많다고 늘 투덜 거리는 것 같지만, 어쩌면 해야될 일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일이 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의 사명과 열정만큼 나 스스로가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느끼는 한미의 교사들은 유치원 교사로써 어느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더 순수한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에 더욱 감사할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틀전의 일입니다. 어린이들은 너무 재미있게 놀고 의미있고 그 자리에서 교사가 한마디의 상호작용에 신경을 썼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꼭 찍어야만 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기록에 대한 생각을 짝꿍 교사와 함께 나눴었습니다. (...)
매년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아직까지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들의 말에 공감을 합니다. 물론 원장님의 말씀에도 공감을 하구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쓰는 저널에는 보여주기 위한 형식이 너무 많은 것같아요. 아마도 포트폴리오에 넣기 위해서 그런 것이겠죠. 만약 정말 교사가 현재 어린이들의 놀이를 그대로 기록하고 그 안에서 해석과 가설, 앞으로의 지원 방향에 대해 협의 하는 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저널로 만든다면 수기로도 쓸 수 있을 것이고. 해석이 없거나 사진이 없거나. 혹은 교사의 예상 가설만으로 이루어진 저널이 있을 수도 있겠죠. (...)
예전에 제가 OO반인 시절에 매주 금요일에는 저널 없이 아이들과 그냥 놀자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막놀면서 어린이들과 더 친해지기도 했고 보이지 않았던 놀이의 맥락이 보이기도 했었죠. 당시에 제가 아이들과 알까기를 하다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짝꿍에게 달려가 자랑을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제 짝꿍도 그랬구요. 하지만. 기록물이 남지 않았죠. 대신 몇장의 흥미 진진한 사진만 남아 있었을뿐. (...)
그래서. 저는 몇년째 포트폴리오에 저널을 넣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 불가능 하다고 하네요. 학부모 입장을 생각하면 그렇긴 하지요. (...)
저도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어떻게 해야 어린이, 교사, 학부모. 그리고 원장 선생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저널’이 나올 수 있을까요. (...)
솔직히 기록작업 다 끝나고 나면 11시가 됩니다. 그러고는 씻고 잠이 듭니다. 저희도 교사이기전에, 행복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잖아요~ 일을 보다 즐겁게 하려면 서로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해야 하겠죠~? 서로 따뜻하고 좋은 말 한마디 건네주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으쌰으쌰합시다. (...)
저도 늘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미만의 문화일지도 모르는 교사들의 능동성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오늘도 이 글을 읽으면서 불편해하는 선생님들이있으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한답니다. (...)
하루밤 동안의 많은 생각들이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마음가짐과 보는 시각에 따라 같은 글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텐데 이번 이슈를 통해 원장님과 교사들의 마인드를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기록작업’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던 메일링 리스트 중 발췌
고마움과 자랑스러움
저는 이 기록을 다시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렇게 온라인에서 진지한 대화가 몇 차례 더 일어난 뒤에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이해관계자가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죠. 자칫 수직으로 되기 쉬운 관계에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에 대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 정도 지나서 좀 더 성장한듯 한 상호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아래의 도식은 교사가 발현적 교육과정을 펼쳐내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지만 교육자들로 구성된 조직의 문화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과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식에서 ‘놀이’를 ‘협업’으로 바꿔도 의미가 통합니다.

앞의 ‘학습공동체’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때의 이런 진지한 고민과 소통은 결국 한미유치원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놓은 징검돌로 작용했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록작업에 대한 갈등은 여전히 문제이지만, 이 전에 그 갈등과 문제를 다뤘을 때와는 다른 층위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전의 기록과 배움을 활용하여 그 문제에 임할 수 있게 됩니다.
역사는 순환한다
사실 이와 같은 논의는 레지오 접근을 처음 시작했던 1997년에 이미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조금씩 변주된 형태로 앞으로도 계속 순환하며 나타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지오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살펴보면 한미유치원의 사례와 같은 적나라한 고민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탐색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추구과정
학교는 내러티브 양식을 계발해야 한다. 교육은 단순히 잘 관리된 정보처리에 대한 기술적 사업도 아니고, 교실에 학습이론을 단순히 적용하거나 과목중심의 성취검사 결과를 사용하는 문제도 아니다. 교육은 하나의 문화에 그 구성원들의 요구를 맞추고, 그 구성원들과 앎의 방식들을 그 문화의 요구에 맞추는 복잡한 추구과정이다.
제롬 브루너
한 해의 호흡과 흐름
유치원의 한해는 숨이 가쁜 호흡으로 흘러갑니다. 졸업과 수료를 한다 싶으면 불과 몇 일 사이에 새 학년을 준비해야 하죠. 지난해를 되돌아 보고, 배움을 얻어 다음 해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움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009학년도에서 2010학년도로 넘어갈 때 그래도 시간을 쪼개어 한 해를 돌아보는 시도를 했죠. 이 일이 의미가 있다는 데는 모두 공감을 했지만, 당장 새 학년의 교실을 정리하고 어린이들을 맞이할 준비 때문에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2011학년도에서 2012학년도로 넘어갈 때는 시간을 훨씬 단축했고, 행사보다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011학년도는 월별 행사에 대한 회고를 온라인 상에서 진행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인데요, 우리의 현실에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현대적인 도구(트렐로)를 활용했습니다. 2012학년도 부터는 매주 정기적인 회고를 했습니다. 행사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교실의 이야기도 간략히 돌아보고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 해에 걸쳐서 한미유치원의 현실에 맞는 요구사항을 탐색하고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음 해에는 조금 더 개선할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수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3학년도에 이르러, 이와 같은 방법을 두 교사가 협의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 회고
2014 회고한미유치원은 구글의 문서도구 https://drive.google.com, 트렐로 https://trello.com, 태블릿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기록작업의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가로축은 다양한 놀이들, 세로축은 그 놀이에 대한 흐름을 두 교사가 협의하며 사진을 첨부하고 댓글을 달아가며 간략하게 기록을 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때로는 좀 더 몰입해서 어린이의 대화와 교사의 해석을 담은 저널을 작성하기도 하죠.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 이유는 밀도있는 기록도 매우 중요하지만 두 교사가 오전의 놀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협의하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방식에도 강점 못지 않은 약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강점과 약점을 하나 하나 더 알아가고 개선안을 찾으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한미유치원의 상황과 현실에 맞는 방식에 접근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복잡한 추구과정입니다. 왜 이렇게 추구해야할까요? 이 모든 것이 결국 어린이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유능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우면 교실의 놀이는 더욱 풍요로워 집니다.




한미유치원 신문 8호 준비를 위해 레지오의 ‘교사집단과의 대화’를 공동 읽기하고 댓글을 남겼던 기록에서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교사 1: 한미유치원 처음 왔을 때.. 참 까마득하지만 더듬어 보자면^^;; 나는 나름대로 무언가 알아가고 있었고, 관찰하고 있었고 의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보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타인의 시선 자체가 참 힘들었었던 것 같아요.
교사2: 레지오 교사의 느낌과 비슷하네요 뭐~^^ 모두가 그랬을거에요.
교사3: (이 앞부분에 말하는 교사에게 완전 공감하고 있음.)
교사2: 이 사람들 토론, 자신을 표현함. 그런 것에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구요. 책에 이런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나중에 해결점을 찾긴 하지만~ 우리도 어려운 점들을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신문에 넣을 수 있을까요? ^^
교사3: 레지오를 하면서 우리의 어려운 점은 토론이죠.. 한미에 다니면서 토론능력?? 늘었답니다. ㅎㅎ
‘내적 동기’에 관한 문제
협업, 공유, 피드백 나누기 등을 하면서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매년 이렇게 새롭게 추구하는 과정이 있다 보니까, 조직 안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는 징후들도 보이더군요. 교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장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동료 장학’이라고 합니다. 그게 의미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도전해 보자고 했지만, 그것은 교사 주도적인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한미유치원의 레지오 접근의 시작도 그랬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이렇게 교사의 ‘내적 동기’로 부터 시작하지 않거나,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은 해내지만, 마음이 지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기다림’이 필요하듯이, 성인의 관계와 조직의 문화에서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유능함’을 믿고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에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에게 징검다리와 도움계단을 놓을 수 있을까요?
놀이에서 배우다 — 적응하는 꽃
한미유치원의 만3세 반은 꽃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반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적응’입니다. 처음 놀이 할 때는 함께 놀 친구를 인식하기부터가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에도 놀잇거리가 되곤 하는 다양한 재료가 네 것인지 내 것인지 가지고도 아웅다웅하는 시기가 한참 이어집니다. 마음과 감정이 충돌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함께 노는 즐거움을 천천히 알아가고 음미할 수 있게 됩니다. 놀이를 더 즐겁게 하려면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 갑니다. 조금만 더 하면 놀이 속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는 선생님이 곁에 있음을 알아 갑니다.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고 재교육 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어린이들의 지식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현실을 다루는 방법이 우리가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에 영향을 줍니다.
칼리나 리날디
우리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어쩌면 어린이들의 놀이 안에 이미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대한 한미유치원 교사들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민들레반의 기록을 보면,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기’는 늘 일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당장 무엇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겠군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또 한번 강조됩니다.
유치원처럼 규모가 커진 사회 경험에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적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엄마와 헤어져서 교실로 들어오고 싶어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놀이’입니다. 하나의 놀이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탐험이지만 또 다른 멋진 탐험들로 연결되죠. 게다가 그 탐험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매체를 만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놀이의 시작, 탐색의 시간
‘때로는 교사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매체 지원 전 교사가 직접 놀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의 놀이 방향을 예측할 수 있고, 성인이 직접 놀이하며 느낀 점을 토대로 지원의 방향, 폭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교사는 사다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교사와 달리 구멍 뚫린 블록에 보빈을 끼워 미끄럼틀을 만들어 놀이했고 사다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놀이 초반 탐색 기간 동안 천장에 닿을 만큼 보빈을 길게 연결하거나 보빈을 안경, 지팡이, 아이스크림 등으로 가작화하여 역할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놀이에서 어린이는 언제나 실제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놀이 속에서 어린이는 마치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다. 돋보기의 초점과 같이, 놀이는 모든 발달적 경향성들을 압축된 형태로 포함하고 있으며, 놀이 그 자체가 발달의 주요 원천이다.
레프 비고츠키
친구의 생각에 내 생각 더하고 함께 만들기



‘우연히 시작된 놀이이지만 어린이들이 만드는 구성물은 대단했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성물의 모습은 만3세의 작업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정교하다. 어린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어린이들의 유능함에 놀라웠고, 도형에 대한 인식이 이 시기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모이면서 교사가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개나리반의 놀이를 보면서 우리의 생각과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적절한 매체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느낍니다. 익숙한 재료가 매체로 탈바꿈될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는군요. 여기서 하나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키워드는 ‘친구’입니다. 재미있는 놀이에는 늘 친구가 함께합니다.
친구가 자신의 것을 만졌다는 것에 기분 나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만들기를 시도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더 멋지고 복잡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병아리, 생명의 경이로움을 진짜로 경험하다
진달래반 어린이들이 알에서 태어나는 병아리와 만나는 과정을 보면 역시 1999년의 진짜알, 가짜알 프로젝트가 떠오릅니다. ‘생명의 경이로움’ 같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군요. 이런 가치는 책에서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해야 아는 종류의 것입니다. 진달래반의 놀이를 보면서 ‘진짜 경험’이 주는 가치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진짜 경험을 하고 못하고는 큰 차이가 있죠. 진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병아리는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옵니다. 알을 깰 때 살짝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이들도 직감하고 있었나 보네요. 약간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알을 대신 깨주면 병아리는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죠. 때론 사람이나 조직도 스스로를 가두고 안주하는 알을 만듭니다. 만약 그 알을 깨고 싶다면 용기와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10년 뒤, 2024년 꽃반의 적응 이야기: 한미유치원은 처음이라 →
놀이에서 배우다 — 갈등하는 나무
한미유치원의 만4세 반은 나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반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감정’과 ‘갈등’입니다. 교사들은 이 시기 어린이들의 감정이 예민하다고 말합니다. 아웅다웅하던 다른 아이는 어느새 함께 다양한 놀이 속의 규칙을 변주해 가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단짝이 됩니다. 관심사나 성별이 서로 같음을 통해 연결되기도 하고, 다름을 통해 부대끼며 성장하기도 합니다. 내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일부러 규칙을 어겨 보는 실험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친구와 함께 노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색으로 말하고 싶은 것 : 색과 경험, 그리고 감정

‘어린이들은 자신이 만든 색에서 연상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색으로 공통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색을 만난다는 것은 색의 이름을 아는 것이라기 보다 색을 통한 감정을 만나는 것이다. 색을 느끼게 되면 그것에 관한 경험을 떠올리게 되고 경험은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 속에는 나와 관계있는 색과 경험, 그리고 감정이 묻어난다.’



- 난 무지개가 별모양이었으면 좋겠어.
- 난 파도 모양도 괜찮을 거 같은데?
- 어떻게 그리지?
- 나는 하트모양 그릴거야.
-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니까 하트모양이었으면 좋겠어!
- 나도! 사랑하니깐 느티나무반 친구들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
- 사랑은 기쁘고 좋지만 슬프기도 해요.
- 친구와 헤어지게 될 때 슬프고 할머니 하고 같이 있던 엄마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요.
- 사랑은 싸우지 않고 함께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 사랑은 우리를 다치지 않게 해줘요. 마음을 고와지게 하잖아요.
- 사랑은 우리한테 햇빛을 줘요.
- 도움은 사랑의 마음을 준다는 거예요.
- 나무하고 우리하고 사랑할 수도 있어요. 나무가 우리를 앉을 수 있게 의자도 주고 책상도 주니까요.
‘어린이들은 능동적인 자세로 색을 탐색하면서 실수와 변형의 과정을 반복한다. 때로는 자기 내면하고의 갈등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친구와의 친밀한 교류, 가벼운 언쟁,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뿜어내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사랑을 좋고 기쁘기만 한 것으로 표현할 줄 알았는데, 사랑은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이라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좋아하는데 헤어져야 할 때 우리는 슬프다. 만남이 있는 것 처럼 헤어짐도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11년 전에도 현재에도 어린이들은 색과 감정을 연결하는군요. 자유롭게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며 표현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다 보니 타인과의 관계에서 각자의 감정과 욕구가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겠군요. 교사들은 혼란과 갈등을 경험해본 어린이들이 감정을 잘 풀어낼 줄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감정의 충돌을 잘 경험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이 시기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건강하게 갈등을 경험해 볼 기회를 뺏으면 안 됩니다. 사회 속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돌보면서 욕구를 표현할 줄 아는 것은 성인이 살아가는 데도 매우 중요한 소양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늘 감정이 충돌하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갈등의 이면에는 공감이 있습니다.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공감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함께 놀이하기
‘놀이가 진행되는 것에 있어서 어린이들과의 나눔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놀이에 대한 어린이들과의 나눔은 놀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의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소나무 반에서는 놀이할 때 항상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다. 빨대 놀이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구성물들이 만들어 지면서 어린이들의 구성물에 대해 나눔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서로의 구성물에 관심을 보이며 자기 생각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며 놀이 안에서 구성물을 만드는 방법 또는 쉽게 구성하는 방법, 더 크게 만드는 방법 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하나의 구성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동시에 함께 놀이하며 다양한 방법들을 이용해 구성물을 구성해나가고 있다. 함께 놀이하기란 서로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 또는 힘을 합하여 돕는 것이다. 단순히 함께 활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조언 및 협력을 주고받는 과정으로 이것은 어린이들에게 있어 다양한 사회적, 인지적 경험을 포함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경험이 된다.’


- 나 지금 엄청 큰 거 만들어요!
- 우리 지금 똑같은 거 만든 다요~
- 우리 그럼 합체할까?
- 그래! 더 커지게 하자!
- 우리 합칠 거에요.
- 그러면 지금보다 더 커질 거에요.
- 그럼 내가 여기다 끼울래.
- 그럼 나는 여기!
- 너 세모 어떻게 만들었어?
- 여기랑 여기를 고리로 연결했어
- 아~ 이렇게?
- 응응! 우와 우리 똑같다.
- 우리 이걸로 길게 연결해 볼까?
- 그래! 우와 이거 그네 같아.
- 선생님 이거 그네 같아요.
- 우리 그네 만들까?
- 히히 그래, 그네 만들자.
- 너는 이쪽해~ 나는 이쪽을 할께
- 그래. 우리 멋지게 만들자.
공유하거나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는 함께 놀이하는 것처럼 하면 좋겠군요! ‘내 아이디어도 네가 사용할 수 있고, 네 아이디어를 내가 사용할 수도 있어!’라고 마음을 터놓고 함께 놀 수 있는 관계일 때 공유는 더 큰 효과를 봅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돕다 보면 결국 네 것과 내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 그럼 합체할까? 그러면 지금보다 더 커질 거야, 그래. 우리 멋지게 만들자.’라는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어린이들의 현실을 다루는 방법이 우리가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에 영향을 꼭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유 공간의 의미
요즘 참나무반과 소나무반 사이의 공간에서 매우 흥미로운 놀이가 진행중 입니다. 한글 조각을 자석으로 붙이면서 한글의 조형성을 탐색할 수 있는 놀이인데요. 글자를 마치 그림처럼 가지고 놀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놀이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이 놀이가 펼쳐지는 공간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석을 붙일 수 있는 벽은 두 교실 사이에 있는 공유 공간입니다. 보통 교실과 교실 사이에 있는 공간은 놀이에 대한 운영과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 하거나, 어린이, 교사 모두 은연 중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나누어서 활용하기 쉽죠. 원래 한미유치원에 교실과 교실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겼던 이유는 원장님이 레지오를 방문하고 ‘환경은 제 3의 교사’라는 그들의 원리로부터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레지오에서는 이런 공간을 ‘피아짜’ 즉, 광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광장은 시끌벅적한 소통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로 그들의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막상 활용 가능한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면 공간의 의미는 퇴색되게 마련입니다. 참나무반과 소나무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이는 반과 반을 나누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한 곳의 아이디어가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 갔다가 확장되어 돌아오는 순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생각을 자랑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뭐만 발견했다 하면 ‘얘들아! 이리 와서 이거 봐!’라고 말하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려다 보니 만4세의 대집단의 이야기 나누기 시간은 흥미진진해 질 때가 많습니다. 한미유치원에서는 물리적인 공유 공간 외에도 ‘방송’이라는 공유의 장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다른 반의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나누면서 다양한 방식의 공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2002년의 ‘방송 이야기’ 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미유치원의 문화 속에 자리 잡은 공유는 어린이들에게 일상 같은 것입니다.

놀이에서 배우다 — 훌쩍 자란 새
한미유치원의 만5세 반은 새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반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성장’ 입니다. 내가 발견하거나 생각하거나 표현한 것을 친구나 선생님에게 표현하면(공을 던지면) 친구나 선생님의 생각이 돌아옵니다. 그러면 또 받은 공을 던져 보겠죠? 이 모든 놀이가 펼쳐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그렇게 놀다 보면 한 해 한 해 훌쩍 자랍니다. 키만 자란 것이 아닙니다. 주고받았던 모든 경험이 생각 주머니를 크게 키웁니다. 이들의 놀이는 다양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놀이를 통해서 어린이들은 마음의 힘을 키우고 자신의 길을 펼쳐 나갑니다. 그렇게 몰입해서 놀이를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은 학교의 역사를 만들고, 놀이의 질은 학교의 문화를 만드나 봅니다.
‘이야기 나누기를 통해서 꿈의 윤곽이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꿈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은 곧 우리의 마음과 행동, 표정까지 바꾸어 간다는 데 의견이 모이면서 전체적인 틀을 잡을 수 있었다. 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린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시화하고자 하였고, 교사가 칠판에 어린이들의 생각을 모아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추가해 꿈의 형태를 최종 완성하였다.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그림 표상해보고 모두의 의견을 모아 재표상해서 함께 구성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연결되는 가치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꿈 - 마음가짐 - 행동 - 습관 등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연결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던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 “우리 머리는 생각 주머니가 있잖아요. 뇌 말이에요.”
- 뇌에서 누가 이기냐 해서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거에요
- 꿈이 심장 바로 밑에 있을 것 같아요.
- 우리 마음이니까 하트 모양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 맞아요. 동그라미 말고 하트로 했으면 좋겠어요.
- 하트를 반 나누는 건 어때요? 친구들이 그린 것 처럼요~
되돌려 주기 및 재구성
‘작품 구성 과정을 거치면서 교사는 어린이들이 서로 많이 물어보며 피드백을 나눌 수 있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의 이야기로 놀이가 시작되었고 어린이들의 생각대로 이끌어 왔던 놀이기에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가장 냉철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일단은 완성된 작품을 실제로 보면서 보완해야 하는 부분과 수정해야 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더해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을 가지고 구성을 하였다.’





새반 어린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협의가 가능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사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생각했던 내용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거나 도식으로 시각화하여 표현하고 소통합니다. 그리고 교사는 그것을 다시 어린이들에게 되돌려 주며, 놀이의 흐름과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순환하는 나선형태를 따라 놀이는 발산하다 수렴하고, 샛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보다 정교하게 발전합니다. 어느새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이죠. 학습의 핵심적인 기제가 다 들어있습니다. 성인이 협업할 때도 이렇게 기민하게 상호작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놀이의 방향과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하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군요.
- “대마왕을 이길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 돼!”




‘전개도를 그려 색을 입힐 때, 접을 경우 어느 위치가 될지 고려하는 모습에 또 한번 감탄했다.’
‘어린이들의 놀이를 들여다보면 종종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비슷한 것들이 계속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 비슷한 놀이라 할지언정 그 놀이를 하는 모든 여건이 다르기에 다름으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일어나는 놀이 안에서 새로운 것만을 찾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과 그 놀이에서 무엇을 찾을 것이며 과거의 놀이를 바탕으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보는 것, 현재의 어린이들은 예전에 했던 놀이를 어떻게 그들만의 시각이나 방법으로 어떻게 풀어가는지, 비슷한 놀이지만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교사가 어떻게 방향을 잡고 지원하는지 등을 고려해 보며 진행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모양자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체 로봇을 만들면서 입체 도형 만들기도 함께 진행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멋지거나 새로운 입체 도형은 곧 바로 입체 로봇의 일부분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대마왕을 이기기 위한 로봇 만들기’라는 공통된 목표하에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하지만, ‘때로는 놀이가 시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어린이들이 열광적으로 선택하고 몰입하는 모습이 서서히 없어질 때, ‘교육적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는 이 놀이가 지속적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낚시 끈을 이용하여 천장에 전시된 로봇을 손으로 치며, 다른 로봇을 건드리게 하는 상황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놀이는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알아차리게 된다. 매달려 있는 로봇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잘 보여지기 위한 전시였지만, 싸우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도록 재구성(매달려 있는 로봇의 위치를 조정)하여 매달아 주었다.’
여기서 교사가 주목한 부분에 큰 공감을 합니다. 입체를 다룰 때 그 안에 학습, 교육적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죠. 하지만 그 놀이에 푹 빠져들어서 몰입할 수 있을만한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대마왕을 이길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 해!’란 욕구를 추구할 수 있게 될 때 놀이는 다시 힘을 발휘하고 놀이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행착오는 기꺼이 감내할만한 즐거운 도전이 됩니다. 동기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죠. 착각이 아닌 진짜 동기를 알려면 경청해야 합니다.
- “어른들만 하는 건데 우리들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너무 재미있었던 선거였어!”
- “마음이 간질 간질 했어~”
‘6월 4일 지방선거 때문에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른이 되어야 투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하며 자신들도 투표를 해보고 싶어 했다. 이에 교사는 어린이들의 의견을 따라 선거를 진행하기로 하며 종달새반의 어린이 선생님을 뽑는 선거를 진행하면 어떨지 제안하였다. 어린이들 역시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고 선거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선거를 마치고 어린이들과 함께 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들은 투표함을 개봉하여 한 표, 한 표 확인할 때마다 매우 집중하며 자신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내비치듯 여러 표정과 몸짓을 보였다. 개표 결과, 총 203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기호 1번 놀이하는 당 후보자가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여기서 정말 어린이들을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팀이 당선되지 않아 아쉽고 속상할 텐데도 뽑힌 어린이들에게 박수쳐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나는 000이 나갔으면 좋겠어!
- 맞아. 제일 얌전하잖아.
- 그럼 우리 이렇게 정하자. 우리 자기가 나가면 ‘이렇게 할거에요’하는 말이 얼마나 멋진지 그 차이에 따라서 정하자. 어때?
- 나는 내가 나가고 싶은데..
- 그러니까 너가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해. 그걸 듣고 정해줄께.
- 내가 뽑히면 바깥 놀이를 자주 할 수 있게 해줄께.
- 가위바위보하자
- 나는 000이 나갔으면 좋겠어. 00은 대그룹 시간에 선생님들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니까.
- 나 나가고 싶어. 난 선생님말 잘들으니까. 그리고 친구들한테 말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 우리 누가 나가면 좋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 그럼 종이에 이름 써서 많이 나온 친구 하자.
공약의 실천까지 이루어졌던 종달새반의 선거 이야기는 정말 어린이들이 많이 자랐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정말 많은 것을 인지하고 있고, 놀이의 규칙을 다루는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 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갈등을 조절하고 협의를 합니다. 스스로 만든 약속을 책임지고 지키기도 하죠. 이런 고도의 사회적 경험에서 배운 내용들은 다른 놀이로 전이가 됩니다. 다른 놀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교실에 한 발 내딛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아이들이 이제 자신의 힘으로 훌훌 날아올라 더 큰 세상으로 또 다른 탐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군요.
놀이는 어린이의 삶이다
금세기에 어린이와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운 것 중의 하나는 놀이는 현실을 실험해 보는 방법일 뿐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어린이들의 자유는 세상을 바꾼다.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다른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쯤 되어서… 그들이 성숙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고 변화시키고 관여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머레이 슈워츠
교사들이 거듭 이야기 하는 한미유치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하는 것들
-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내가 못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
-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다시 도전하는 방법 터득하기
- 즐거움-즐겁게 놀았던 경험 쌓기. 더 성장해서 돌이켜 봤을 때 ‘그때 참 즐거웠는데~’라고 추억할 수 있는 경험
-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기
- 마음의 힘을 키우기 (마음의 면역력, 나만의 백 가지 언어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 내 생각을 말하면 실행으로 이어지는 경험
- 자유롭게 놀이하며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만들기 (부모나 교사가 만들어주는 길이 아닌)
-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성인을 만나는 것
- 그 탐험의 여정을 함께 할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배우기
- 풍요로운 놀이 속에서 삶의 질 높이기
생각의 씨앗
1996년 레지오 첫 번째 연수 여행 때 받았던 감동은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말하는 일상, 문화, 민주주의, 가치는 우리의 유아교육현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서 실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 20년이 다가오는 최근에는 우리 유치원에서도 교육의 문화를, 의미를, 가치를, 권리를 매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의 놀이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놀이가 잘 흘러갈 수 있게 돕는 과정에서 교사와 부모도 함께 같은 이슈를 논의하게 된 일이지만요. 이번 30주년 기념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어린이들이 한미유치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깜짝 놀랐고 감동하였습니다. 교사들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그렇게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인 동시에 자기 자신들에 대한 기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과 다양한 도전을 해왔습니다. 안으로는 어린이, 가족, 교직원과 함께 그리고 밖으로는 교육의 문화를 일구어나가고자 노력하는 기관들이 함께 하는 일이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어린이들이 어린이답게 어린 시절을 즐겁게 놀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놀이는 어린이의 삶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의 씨앗’을 여러분들께도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원장 박소미
